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 (문단 편집) === 비극으로 끝난 사랑 === 격노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루돌프 황태자를 불러내서 그의 면전에서 '''"너 같은 놈의 얼굴은 보고 싶지도 않다. [[적반하장|제발 가정에 충실해라]]!!!"'''라고 한 후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심지어 신임 대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는 황태자가 경의를 표하러 나오자 '''돌아서버렸다'''고 한다.] 결국 어릴 적부터 축적되어 왔던 각종 스트레스와 [[분노]], [[외로움]]이 한 순간에 쏟아져 나오면서 루돌프 황태자는 마리와 함께 [[사냥]]용 [[별장]]이 있는 메이얼링으로 [[밀월]]여행을 가서 마리를 죽인 뒤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동반자살]]했다.'''[* 이 때문에 장례식 때 공개된 루돌프의 [[https://www.atlasobscura.com/uploads/assets/Crown_Prince_Rudolf_1889.jpg|사진]](흑백 사진이고 평온한 표정이라 충격은 덜하지만, 그럼에도 시신 사진이므로 클릭 주의)을 보면 시신의 머리에 있는 총상의 흔적을 붕대로 가려서 장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정사]](情死). 이때 루돌프의 나이는 만 30세였고 마리 폰 베체라의 나이는 겨우 만 '''16세'''였다.[* 베체라는 사후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1945년]] [[소련군]]이 빈을 점령했을 때에 관이 파헤쳐졌고, 이 때에 두개골에 총상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정확한 진상은 더 이상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녀의 유골을 누군가가 훔쳐가는 일이 생기는 등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다.] 이 동반 자살 사건은 이후 '마이어링 사건'으로 언급된다.[* 루돌프의 외사촌 라리쉬 백작부인 역시 대가를 받고 둘의 뚜쟁이 역할을 한 것부터 메이얼링 전날 행적까지 전부 털리면서, 프란츠 요제프와 엘리자베트 황후의 분노를 사 오스트리아의 궁정과 사교계에서도 완전히 쫓겨나고 남편에게도 초스피드로 이혼당했다. 조카인 라리쉬를 한 때 매우 아꼈던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엘리자베트 황후]]도 큰 충격을 받아 이후 오스트리아 궁정에서 라리쉬는 영영 [[이름조차 불러선 안될 자]]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도 있다. 애초에 루돌프는 외도가 잦았던 탓에 정부가 많았고, 그 중 미치 카스파(Mizzi Kaspar, [[1864년]]~[[1907년]])라는 창부와 인간적으로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치 카스파가 그의 동반자살 제안을 거절하자 대타(?)로 베체라와 함께 자살했다는 것이다. 미치는 설마하면서도 경찰에 황태자가 자살하려 한다고 신고해서 구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상황 종료. 심지어 루돌프가 자살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다. 루돌프의 누나 [[기젤라 루이제 마리|기젤라]]는 '''"루돌프의 머리에 난 총상 근처에 화상이 없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는 루돌프가 직접 머리에 총구를 대고 총을 쏘지 않았다(일정 거리를 두고 서 있던 사람이 총으로 루돌프의 머리를 쏴서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뿐만 아니라 [[카를 1세]]의 황후인 [[부르봉파르마의 공녀 지타]] 역시 루돌프 황태자는 사실 살해당했다고 언급했다. 위의 화상 증언도 어렸을 때 지타가 기젤라의 대화 내용을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장남 [[오토 폰 합스부르크|오토 대공]]이 증거를 물려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대공의 반응은 평생 [[안알려줌]]. 뭐가 맞든 혼자서는 죽지도 못하는 찌질남과 중2병 걸린 사생팬이 벌인 이 행각으로 제국은 물론 유럽 전체가 뒤집히고 눈 뜨고 당한 거나 다름 없는 베체라 가문은 하루만에 풍비박산에 투명인간 취급당했으니 결국 둘 다 끝까지 민폐. 마리의 급 높은 도라이력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와 유서에서도 느껴지는데, 그 정점을 찍은 부분은 라리쉬 백작부인에게 남긴 중2병 넘치는 편지에서 "정말 고맙고 우리 때문에 당신도 폭망할 거예요. 그럴 때 젤 좋은 방법은 미련없이 우릴 따라오는 거예요^^"라는 부분(.....) 저 두 사람의 증언과는 별개로 피살설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루돌프 황태자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를 [[가톨릭 교회]]에서 허락해 준 점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자살]]을 큰 죄악으로 여겨서 당시 교회법은 자살자에 대한 장례 미사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루돌프가 살해당했다는 증거를 오스트리아 황실이 가톨릭 교회에 극비리에 제시하고 이를 수용했다는 주장이다. 다만 대외적으로 황태자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황실의 명예 문제로 끝날 리가 없기 때문에 비밀로 덮었다는 설이다. 살해의 배후는 제각각으로, 루돌프의 즉위를 반대하는 황실 내 보수파, 혹은 황실을 증오하는 공산주의 세력 등이 후보에 있다. 다만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의 경우 자살이 아니라 [[병사#s-2|병사]]로 보아 장례 미사를 허용했기 때문에, 장례 미사가 거행된 것이 피살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처음에는 교회가 장례 미사조차 단칼에 빠꾸 먹였는데 암살이라서, 혹은 자살이 맞지만 황실이 바티칸에 미친 듯이 로비를 넣어 정신병으로 꾸며 허락을 얻어냈다는 설도 있다. 생전 루돌프가 교회를 상대로 심히 어그로를 끌었던 전력 때문에 완전 찍혀있었던 것도 한몫했고. 아내 [[벨기에의 스테파니|스테파니]]는 루돌프의 사후 11년 후인 1900년에 헝가리의 귀족과 재혼했다. 제국의 전 황태자비가 일개 귀족과 재혼하겠다고 하니 아버지 [[레오폴드 2세]]와 전 시가인 오스트리아 황실 모두 곤혹스러워 했지만 스테파니가 루돌프 때문에 워낙 고생을 많이 한데다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서 결국 결혼을 허락했고, 레오폴드 2세는 딸과 연을 끊었다. 루돌프는 아내에게 보낸 유서에서 이제 자신이라는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하라는 말을 남겼고 --내용 요약: 진짜로 '꺼져줄게 잘 살아'의 정중한 버전 맞다-- 이 편지는 루돌프의 여러 유서 중 스테파니의 자서전을 통해 유일하게 공개되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루돌프의 여자 관계를 털어놓으며 '전날까지도 끼고 있던 그 창녀(미치)였으면 이해라도 하지, 베체라라니 이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라는 내용을 써서 진짜 연적은 미치 카스파였다고 인정해 황태자의 진짜 사랑으로 인정받으려던 그 '베체라'의 야심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스테파니와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는 없었고 1945년 8월 23일에 사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